참판공(휘 선)및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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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6회 작성일 10-08-17 23:23본문
종사랑 강공 묘비명
공의 휘는 희우(喜遇)이고 자는 흥보(興甫)이며 성은 강(姜)씨이고 진양인이다。 시조의 휘는 민첨(民瞻)이니 고려에 벼슬을 해서 현종때 병부상서를 지냈는데 시호가 은열(恩烈)이며 이후로 벼슬이 계속 이어졌으며 조선조에 들어와서 휘 경서(景敍)는 호가 초당(草堂)선생인데 무오사화(戊午士禍)때 피해를 당했고 벼슬은 대사간(大司諫)이다。초당공의 손자 휘 섬(暹)이 명종 선조 두 임금때 훌륭한 신하로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지냈으니 곧 공의 증조이다。 조고의 휘는 의호(義虎)니 성균관 사예이고 선고의 휘는 선(璿)이니 장례원 사평으로서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어머니는 진천송씨(鎭川宋氏)니 증호조판서 백순(伯純)의 女이다。만력을묘(萬曆乙卯 : 광해 七년 一六一五) 十월 二十四일 공이 서울 자택에서 태어났으니 어릴때부터 총명하고 영리했으며 장성해서는 학문을 더욱 열심히했다。
병자호란때는 양친을 모시고 단양산골에서 난리를 피했고 경진년에는 부인의 상을 당했고 기유년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니 일찍이 살아계실 때 병석에 계실 때 봉양하느라 매우 피로했고 돌아가셔서 영위 받들기를 제도에 지나치게해서 마침내 경술 二월 十一일에 세상을 마치니 수가 五十六세이 다。 제천 남면 월림리 자좌(子坐) 언덕에 장사지냈다。배위는 전주이씨(全州李氏)니 현감 유인(惟寅)의 女인데 광평대군 여(璵)의 七세손인데 규중 범절이 특이했 다。만력경술(萬曆庚戌 : 광해 二년 一六一〇) 十월 初八일에 출생해서 병진八월 十四일에 졸했으니 공과 합폄했다。 아들 둘 딸 하나를 두었으니 아들은 진(鉁)과 생원인 순(錞)이고 딸은 정여심(鄭汝諶)이다。 택용(澤龍) 은 진의 아들이고 위용(渭龍)、해용(海龍)、제용(濟龍)、한용(漢龍)、권존(權存)、정수화(鄭洙華)와 측출 사용(泗龍)은 순의 아들 딸들이다。정여심이 三男五女를 두었고 택용이 三男二女를 두었는데 결혼하지 아니했고 그 밖에는 어리다. 내외 증현손이 三十여명이다。
공이 어버이 섬기기를 효도해서 전후 거상에 정성과 예절을 잘 갖추었으며 후상(後喪 : 아버지 상)때는 이미 늙어 백수이고 위험한 병으로도 종일토록 질대(絰帶 : 상복)를 벗지 아니하니 슬픔이 좌우를 움직였 다。 병세가 위독함에도 오히려 제사 절차를 열심히 강조했고 성품이 깨끗하고 정직해서 다른 사람의 비의(非義)를 보면 조금도 용서하지 않고 문득 준엄하게 꾸짖으니 사람들이 꺼려했 다。 뜻이 고상하고 결백해서 일찍이 관록에 뜻을 두지 아니했다。심정승 지원(之源)의 집과 가까이 있어서 공의 어짐을 알고 천거해 발탁할 뜻이 있으니 어떤 사람이 공을 찾아가 보기를 권하니 공이 말하기를 선비의 본의(本意)를 파는 것은 옛 사람도 부끄러워했는데 내가 어찌 차마 이런 일을 하리오했다。 난리를 만나 기호(圻湖 : 경기도 충청도)지방에 떠돌아 다니다보니 가정이 퇴락해서 봉생송종(奉生送終)을 인정에 맞게 못한 것이 한이 된다고 했다。궁한 산골에 사는 것이 뜻한바가 아니어서 항상 답답해하고 즐거워하지 아니했고 만약 좋은 때 좋은 시절을 만나면 입속으로 흥얼거리며 회포를 풀었다。하루는 친구와 더불어 술을 대접하려고 약속을 했는데 집안에는 벽만 있을뿐 아무것도 없으니 부인 李氏가 머리에 달비를 끊어 팔아 가지고 술을 장만하니 고을 사람들이 다투어 칭찬하면서 그 부인의 덕행을 말하고 또한 공이 집안에 법도를 잘 세운 것을 볼 수 있다 하더라。아! 공은 훌륭한 가문에 자손으로 일찍이 큰 뜻을 품고 타향에 돌아 다녔으나 마침내 그 재주를 펼치지 못하고 오직 부모에게 효도하고 곤궁함을 참으며 벼슬을 구하지 아니했으니 가히 독행 군자라 할 수 있는데 세상에서 그 현명함을 알지 못하니 슬프도다。 명을 짓기를
골짜기에 난초 누가 그 향기를 알아주며 독안에 구슬 누가 그 광채를 알아주리。
아름답도다 강공이여 몸매도 정성스럽도다 구원에 뜻을 두었으나 청렴함은 드러났도다。
어찌 보답이 없으리오 후손이 창성하리라 비석에 글을 새겨 백대도록 전하리라。
통훈대부 전행 홍문관 부응교지제교 겸 경연시독관춘추관편수관 박만인 삼가지 음。
註①봉생송종(奉生送終) =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고 돌아가심에 편안히 보냄
諱 澤 龍
通德郞晉陽姜公澤龍 配 恭人 驪興閔氏 之墓
公諱澤龍字雲瑞號敬簡齋系晉陽殷烈公民瞻戶曾祖諱璿壬辰衛 廟社功陞通政大夫堂上陞 贈資憲大夫戶曹判書祖諱喜遇從仕郞考諱鉁通德郞恭人全州李氏 公癸丑三月十五日生不事科業從事畏菴李先生栻之門下辨難性理之學後有師友時牒性理要解儀禮等書癸亥十月一日忌配驪興閔氏己酉四月十日生忌癸亥二月十七日
西紀二00七年 十月 八日立 鍊達篆書
八代孫 善圭 顧 問 煥福 顧 問 在圭
會 長 煥基 副會長 煥應 理 事 煥俊
總 務 鍊達 監 事 龍圭 監 事 鍊鎬
諱 宜㷜
通訓大夫果川縣監晉陽姜公宜㷜 配 淑 夫 人 昌 寧 成 氏 之墓
公 諱는宜㷜이요字는輝伯이며系晉陽으로高麗太子太夫殷烈公民瞻의 後孫이오. 九代祖에諱景叙이시니文科에及第하시고都承旨로贈資憲大夫禮曹判書이고號는草堂이시다. 八代祖에諱公望이시니從仕郞이며贈資憲大夫刑曹判書요 七代祖에諱暹이시니文科及第後漢城判尹을거쳐資憲大夫戶曹判書요號는松月堂이시며 六代祖에諱義虎이시니文科에及第하여成均館司藝贈資憲大夫兵曹判書요 五代祖에諱璿이시니一等功臣堂上官戶曹參判贈資憲大夫戶曹判書요號는白癡齋라 高祖에諱喜遇이시니從仕郞을지내셨고 曾祖에諱鉁이시니通德郞이라 祖에諱澤龍이시니通德郞이시며 考에耒이시며通德郞이요母는恭人光州盧氏이시다. 公은生父棨字武仲母延安李氏사이에서西紀一七二九年三月一日에出生하시어宗家伯父인諱耒字聖始의系子로入蹟西紀一七六四年白衣承召拜以國亂功臣特爲陞資田西紀一七七O年五月將仕郞萬寧殿參奉으로西紀一七七一年十一月十日朝奉大夫司饔院奉事로西紀一七七四年六月十九日通訓大夫尙衣院別提로西紀一七七四年十二月二十七日漢城府主簿로西紀一七七八年四月二十六日義禁府都事로西紀一七七八年八月八日弘陵令拜果川縣監으로西紀一七七九年安峽縣監鐵原鎭官兵馬節制都尉를지내시고西紀一七九五年正月二十日에돌아가시니享年六十六歲시다.三男을두시니琳.琰.珪이고琳은一男二女를두니男은錫欽이다.琰은二男三女를두니男은錫柱錫恒이다.珪는三男을두니錫亀錫鳳錫麟이니內外曾玄孫이並一百五十餘人.
西紀二OO七年 十月 八日立 鍊達篆書
六代孫 善圭 顧 問 煥福 顧 問 在圭
會 長 煥基 副會長 煥應 總 務 鍊達
監 事 龍圭 監 事 鍊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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